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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키우기

오후 두 시, 아무도 없는 집에서

광장동 해당화 2026. 5. 26. 14:22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다.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고,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앉아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시간에.
이게 이렇게 낯설 줄은 몰랐다.
 
애가 초등학생일 때는 방학이면 온 집 안이 시끄러웠다.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먹고 싶다, 어디 가고 싶다, 이거 어디 있냐—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받던 오후들이었다.
피곤하기도 했지만, 그게 내 일상의 무게이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들어온다.
학원, 자습, 야자. 내가 뭔가를 챙겨줄 틈도 없이
하루가 지나간다.
물론 그것대로 마음이 쓰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낮 동안 집은 나 혼자다.
 
처음엔 좀 어색했다. 뭘 해야 하지? 싶었다.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면
어쩐지 죄스러운 기분도 들었다.
'나 이래도 되나?' 하는 이상한 죄책감.
오래 엄마로 살다 보면 쉬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하는 기분이 든다, 이상하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그래서 한동안은 일부러 뭔가를 채워 넣었다.
유튜브를 틀어놓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빈 공간을 그냥 두기가 불편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냥 두게 됐다.
커피 한 잔 내려서 창가에 앉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특별한 이유 없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멍하니 햇볕을 쬐는 시간.
누군가를 위한 게 아닌 그냥 나를 위한 오후.

이게 사치인지 여유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오랜만에 나로 돌아오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크는 게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런 오후를 돌려받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아마 이게 이 나이에,
이 시절에 생기는 조그만 선물 같은 거겠지.

오늘도 두 시쯤 혼자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아무도 없는 집이 오늘은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